1. 터키 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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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한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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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풍광 즐기기

우리의 생김새는 달라도 우리가 주변 환경을 가꾸거나, 환경에 의해 가꿔지는 동안 우리의 속성과 운명은 같아질 것이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경험이, 기억 할 만한 것이든 평범한 것이든, 삶을 가능케 하고 삶을 반영하는 풍경 안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풍경은 음악처럼 만국의 언어다. 세심한 여행자라면 물론 모든 것을 터득 할 것이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거나 미숙한 사람에게는 무엇을 의미할까? 현지인에게 풍경은 삶 그 자체다. 위험에 처하거나 사라지기 전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풍경에 익숙하다는 것은 친밀하다는 것이고, 강한 느낌으로 서로 얽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복잡한 것에 대한 감각을 키우기 전에 분석적 접근을 할 지도 모른다. 여행자들은 결국 풍경을 구성하고 있는 장소의 생활 단면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될 것이며, 그 안에 있는 수많은 의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터키 풍광 읽기 여행을 떠나려면 이 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먼저, 분석적으로 접근 해보자. 풍경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지질학자나 자연주의자에게는 자원을 지닌 자연이나 지형으로 보일 것이다. 또 풍경은 도시나 농촌의 거주양식에 반영된 역사와 문화이고, 시간의 흐름을 드러내는 것은 건축학이나 문화 유물, 그리고 중요한 사건일 것이다.

6천만이 넘는 인구의 생계수단이자 거주지로서, 움직이는 풍경이라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풍경은 또한 이념의 거울이자 패션, 그리고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곧 다가올 변화다. 이 같은 다양한 것들이 터키 풍경의 겉 모습을 구성한다. 터키는 자연, 문화, 역사, 신앙, 사고 등에서 놀랄만한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경험 많은 여행자들 이런 사실을 안다. 다양성은 가장 좋아하는 지역의 중요한 특징일 뿐이다. 터키는 경험 많은 사람들 조차 도전해 볼만큼 다양하다. 왜냐하면 좁은 공간에서도 경치 변화가 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터키가 ‘모습과 행동의 부조화 속에서 소리와 냄새와 인간이 하모니를 이룬’ 풍경을 지녔다고 한다. 여행자는 아마도 다른 점에서 보면 논리적이고 아름다운 풍광을 깨닫는데, 그리고 분위기와 표정이 제 각각인 친숙한 얼굴 같은 그 동일성과 조화를 깨닫는데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자연풍광

터키의 풍광은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뒤 그 무늬가 서서히 변화하면서 자리를 잡은 길이 잘 든 거대한 터키 카펫 같다.

터키의 풍광은 다양한 지질학적 지역을 포함한다. 동서 축으로 횡단하다 보면 겨울이 길고 추운 바위투성이의 눈 덮인 산맥을 만난다. 고원지대엔 봄이 되면 야생화가 피고 하천도 많지만 여름은 길고 기온이 낮다.

완만한 구릉에는 건조한 스텝지역이 있고,끝없이 펼쳐진 밀밭과 태양이 하늘을 가로지는 듯 금빛이나 보라빛, 또는 회색을 띤 메마른 바위 층도 있다. 또 요정의 굴뚝과 동굴 언덕으로 이루어진 마법의 땅, 산맥 사이의 비옥한 계곡, 친근한 자연과 편안한 생활이 있는 레이스처럼 생긴 에게해의 해변 등도 이곳의 풍광을 구성한다.

흑해 연안의 청명한 온대지역에서 시작되는 북남축에선 주변에 둘러쳐진 높은 산맥의 보호를 받으며 헤이즐넛과 옥수수, 차 등이 재배된다(이곳에 머물다 보면 이런 풍경은 일상이 될 것이다). 고지의 바람 많은 도로에선 흑해의 아름다운 경치를 내려다 볼 수 있다.

풍경은 과수원이 많은 고원 스텝지역에서 산맥 아래 낮은 지역을 거쳐 넓은 콘야 고원과 토로스 산맥, 침엽수림, 그리고 월계수와 꽃 박하가 무성한 관목지대를 지나 지중해까지 이어진다. 여기서 동쪽으로 돌면 바나나농장과 목화밭을 지나 사막처럼 생긴 지대가 나온다.

시리아의 북쪽인 이곳은 모든 색감이 진한 갈색을 띤다. 차로 2시간~4시간 가량 더 가면 경치나 온도, 고도, 습도, 초목, 기후 등 모든 것이 전혀 다른 지질학대를 만난다.
이 같은 풍광은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 대륙의 특징을 합한 것이다.

이곳은 북위 40도선상의 어느 지역보다 생태학적 다양성을 띠고 있다. 이 다양성은 3대륙이 지질학적으로 분리되기 전과 같은 다양한 동물 표본이 있다는 데서 잘 드러난다. 물론 이 동물들은 지금은 각 대륙에 따로 서식한다. 이곳에선 새들이 1년에 두 차례 이동하듯 조수와 자연의 순환을 목격한다.

가을철 이스탄불 참르자 언덕에선 무리를 지어 날아가는 황새 떼를 볼 수 있다. 홍학들은 에게해나 지중해의 강가 계곡에 둥지를 틀고 내륙 지방의 호수에서 겨울을 난다. 달리안(또는 지중해 17개 해변 아무 곳)에서는 봄철인 5월쯤 세상에서 가장 겁 많은  동물인 바다거북이 모래사장에 알을 낳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터키는 동물들의 천국이자 수많은 꽃의 원산지다. 그 중 하나가 튤립이다.

튤립은 1500년대 이스탄불에서 비엔나로 전해졌는데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특히 네덜란드에서는 더욱 관심이 커지면서 1634년경에는 오늘날 하이테크주식에 투자를 하듯 튤립재배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튤립포마니아’들이 생겼다. 고상하고 즐거운 시기였던 17세기를 터키에선 ‘튤립시대’라고도 한다.

벚나무나 살구, 아몬드, 무화과 등도 터키가 원산지다. 인간의 조상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진화해온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이브가 무화과 잎을 걸쳤다는 묘사는 무화과가 만발한 터키가 손상되지 않은 에덴동산이었음을 확인시켜준다.

역사 및 문화 풍경

터키의 인간적인 풍경은 문화와 떨어질 수 없다. 외부인들에겐 접근할 수 없거나 동떨어진 지역(높은 산악지대나 비밀스런 계곡 같은)이 많은 탓에 ‘황무지’라는 인식을 주지만 방문자들은 지금도 삭막하고 돌보지 않는 이 지역이 예전에는 문명의 발생지였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어떤 거주지는 역사가 9000년이나 되는 것도 있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기원은 다양하다. 이곳에는 어디선가 밀려 들어온 사람들이 원주민들과 뒤섞여 새로운 통합체를 만들었다. 기원전 2000년에서 1500년 사이 이곳의 풍광은 세계 문명의 중심지였다. 세계 무대라는 것은 지난 4천년 동안 이곳의 풍광 안에 있는 것 중 우리가 이해하는 것에 의해 해석될 뿐이며, 그것은 이 풍경을 꾸미는 유적과 기념물에 의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다.

근대화(터키에선 1950년대 고속도로 건설시기부터 시작됨) 이전, 이곳의 풍경은 수 천년 전과 같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 앙카라의 아나톨리아문명 박물관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7천년 전 농촌의 축소판은 이 박물관까지 가는 동안 마주치는 것들과 비슷할 것이다. 오랜 문명을 지닌 다른 여러 곳 처럼 건축기술과 배치 형태는 오늘날까지 남았는데, 이것을 우리는 토속적이라 부른다. 이런 것은 언제 지어졌고, 왜 바뀌었을까?

오늘날 아나톨리아의 거주 형태는 과거 고대문명 때와 크게 차이가 없다. 지금도 사용되는 길은 동서양의 위대한 전사들과, 캐러밴, 또는 우편물이나 비밀 합의서를 지닌 채 질주하던 밀사들이 다니던 그 길이다. 성 바오로가 동료들과 함께 지나고, 수피교가 교세를 확장하던 길이기도 할 것이다.

로마시대 때 지어진 아름다운 수도교는 도시로의 집중을 가능하게 했다. 시난이나 다른 많은 오스만제국의 건축가들에 의해 곳곳에 건설된 다리는 재화와 용역의 안전한 통로로 여전히 사용된다. 11세기 셀추크에 지어진 캐러밴숙소는 피곤한 여행객들에게 휴식처가 되어 준다. 어떤 것은 화려한 호텔로 변신해 있다.

트로이나 페르가뭄, 에페수스, 밀레투스, 프리에네, 디디마, 아프로디시아스, 헤라크리아, 카우노스, 페르게, 아스펜도스 등 거대한 고고학적 유적지에 역사적인 건물이 있듯, 수많은 해안 지역 도시나 마을도 주변에 아나톨리아 시대의 유적을 지니고 있다. 클레오파트라가 수영을 즐겼을 해안가의 경치 좋은 곳엔 어디나 고대 극장이 자리잡고 있다. 고대 광장도 가까운 곳에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과거 그대로다. 시장마저도. 어떤 마을엔 물 밑으로 가라앉은 ‘수중 도시’도 있는데, 맑은 터코이즈 해안에서 수영을 즐기다 보면 만날 수 있다.

아나톨리아 내륙지역에선 하티스나 히타이트, 프리지안, 우라티안, 리디안 등 또 다른 고대문명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 문명 권 에서는 많은 전설이 전해진다.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의 재물, 마이다스왕의 황금 손, 어린 알렉산더가 검으로 푼 고르디온의 매듭 등이다.

이 지역엔 또 수도원과 지역성인, 영웅, 예술가, 시인의 무덤, 모스크, 교회, 성벽, 요새, 궁전, 분수, 묘지 등 성스럽든 평범하든 깊은 의미를 지닌 작은 유적지가 있다. 이 지역의 언덕은 고대 도자기 조각으로 덮여 있고, 그 당시의 성벽도 있다. 이 유적지 한가운데서 아이들이 뛰어 놀고, 양들이 방목된다. 카파도키아의 동굴 은신처는 최근까지도 마을의 냉장실이나 와인 저장소로 사용됐다.

터키의 다양한 풍광은 역사유물 보전을 어렵게 한다. 우선은 가장 중요한 곳을 본래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 것부터 시작해 수많은 유산을 발굴하고 목록화해 보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또한 강력한 법으로 유물 유출을 방지하고 있다.

터키의 대도시

터키의 진원지는 이스탄불과 앙카라, 이즈미르 등 3개의 큰 도시이며, 이 도시들은 역사적인 섭리나 계획에 의해 거대한 도시가 됐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터키공화국이 건국되자 이 도시들은 사회와 상업의 중심지가 됐다. 산업과 상업시설은 이스탄불이나 이즈미르의 안정된 상업지역으로 모여든 반면 정부 조직은 새 수도인 내륙의 앙카라에 들어섰다. 이들 도시에는 터키에서 가장 좋은 대학과 예술학교, 극장, 콘서트홀 등이 있다. 유대인이나 기독교단체, 그리고 오스만제국 전역에서 모여든 이주자들이 이들 도시에 다양성을 보태면서 아나톨리아 특유의 인간 모자이크를 구성했다.

이들 도시의 선술집에는 예술가와 배우, 시인, 언론인들이 드나든다. 오늘날 터키의 젊은이들은 커피점이나 도서관에 앉아 나라의 미래를 구상한다. 1960년대 이래 존재해온 여러 노동자 지식계층은 자주 찾는 레스토랑에서 와인이나 보드카 잔을 기울이며 현실을 개탄한다. 도시 젊은이들은 화려한 쇼핑몰과 디스코에서 근대화의 열매를 소비한다.

전형적인 도시 남녀 지식층은 세계 여러 나라의 같은 계층과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당신의 여행에 무난하고 재미있는 동반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견문이 넓고 2개 국어를 사용하며, 참을성도 많지만 무거운 이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그들 또한 가족을 지키려는 신념, 나라와 사회에 대한 충성과 복종심, 인간 관계의 공명정대함, 호의, 동점심, 전통에 대한 존중 등 모든 터키인들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대도시에는 수많은 박물관이나 유명한 역사유적지 뿐 아니라 나이트클럽, 선술집, 그리고 은이나 구리제품, 카펫, 황금 등이 있는 시장도 있다. 물론 이스탄불은 최고의 품격을 갖추고 있다. 각 도시마다 지닌 독특한 풍경은 별도로 소개할 필요가 있다.

대도시엔 또 터키음식을 맛볼 수 있는 정평이 난 레스토랑이 많다. 식사는 터키에서 가벼운 일이 아니다. 좋은 레스토랑에서 친구나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는 4~5시간이 걸린다. 음료와 함께 계속 이어지는 각종 요리를 맛보면서 나누는 대회는 유머에서 시작해 시 암송이나 과거의 회상으로 이어지곤 한다. 터키 요리는 다양성이나 영양,기교에서 프랑스,중국요리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도시의 옛 거리를 보고싶어 한다. 전통적으로 시장 거리는 옛 길드 처럼 기술이나 거래 형태에 따라 분류돼 있다. 벨그라데에서 다마스쿠스까지 오스만제국시대의 도시들은 종교적 연줄에 의해 형성된 공동체 안에 세워졌다. 이 공동체는 점차 도시의 다른 지역에 통합됐으며, 도시는 소방이나 안보,교육 등 지역사업을 구성하면서 더욱 커졌다.

예배당과 지역정부, 무역, 오락거리 등을 갖춘 옛 시가지는 시민들이 어울리고, 안전을 제공받고, 정부보조금을 받으면서 문화와 생을 유지하는 곳이었다. 교회와 유대교회,모스크 등은 메드레세나 종교학교 등과 더불어 여전히 옛 시가지에 남아 있다.

신시가지는 고층빌딩과 국제적인 사무빌딩, 고급호텔, 최고급 레스토랑과 바, 화려한 쇼핑거리로 이루어져 있다. 근대화되면서 아파트가 자갈로 만든 거리와 그늘진 안마당을 내려다볼 수 있는 1~3층 정도의 전형적인 집들을 대체했다. 이웃주민과의 우호는 터키에서 가장 중요하다. 수십 가구가 함께 사는 아파트가 도입되면서 도시인들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주

변에 대한 관점도 이웃에서 난방이나 보수 등 아파트의 실용적인 문제로 옮겨갔다. 지난 30년 동안 터키의 행정구조나 법률,규정 등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TV 연속극의 무대가 된 아파트 생활은 이웃관계의 중심이 됐다. ‘집이 아닌 이웃을 사라’는 터키 격언이 어느 때보다 와 닿는다. 대부분의 이웃들은 주말이면 농산물점 이나 과일상, 야채상, 정육점, 식료품점, 빵집, 화원에 다녀온다. 농산물 가게를 보게 된다면 들어가서 과일이나 야채를 맛보기 바란다. 이것은 유전공학 발전하기 전 터키인들이 맛을 보던 방법이다.

대도시 외곽은 농촌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농촌에서 도시로의 이주는 1960년대 이후 터키에선 하나의 흐름이 됐다. 흔히 ‘게제콘두스(밤새 내던져지다)’라고 하는 이 지역엔 고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다. 비록 행정력이 미치지는 못하지만 전기도 들어오고 집집마다 TV 안테나가 지붕에 걸려 있다.

터키의 도시들은 매우 안전하다. 범죄율이 낮아 밤에도 돌아다니기 괜찮고 이웃관계도 밤이 되면 활기를 띤다.

해안 개발

터키의 모든 해변에는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건물들이 생겨나고 있다.

터키의 건축경기는 인구가 많은 서부 지중해 연안에서 가장 활발하다. 아름다운 이곳 해안에는 여름 별장지대가 즐비하고, 대부분 임대가 가능하다. 주말 휴양지는 대중적인 케메르-안탈랴 지역 해안가에 많고, 아침식사가 제공되는 기품 있는 호텔은 대부분 해안가의 작은 마을에 많다. 대부분의 해변은 배를 타야 갈 수 있다. 장기 전세 요트나 보트가 항상 대기하고 있지만 하루 관광에 임대되는 작은 보트도 있다.

이곳에선 족장이나 왕자,세련된 유럽인, 노인, 아마추어 고고학자, 요트성원, 산악인, 아기가 있는 젊은 가족, 새로운 도전에 나선 도시의 엘리트 등 누구에게나 맞는 다양한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환경주의자라면 아마도 가장 환경친화적으로 자연을 보호하려는 조심스런 접근에 찬사를 보낼 지도 모른다.

고대의 도시들

터키의 고대 도시들은 실크로드나 향료로드 같은 역사적인 무역루트 상에 위치해 있다.

경작에는 좋지 않은 땅에 세워진 이들 도시들은 지역 상황에 맞게 도시풍의 복잡한 건축양식을 지니고 있다. 도시마다 특징은 뚜렷하지만 공통적으로 요새가 있고, 종교학교나 복지시설을 갖춘 한 두개의 큰 모스크도 갖추고 있다. 또 서구의 광장과 비슷한 전통 광장과 목욕탕, 바자르에 기원을 둔 길드조직도 있다. 이와 함께 마당을 갖춘 전통 터키 가옥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배치 등도 갖추고 있다.

터키인들은 축구에 열광한다. 미래의 선수가 길거리에서 하루종일 볼을 차고 있을 것이다.그늘진 광장의 커피하우스 테이블에는 사람들이 앉아 게임을 하거나 친구나 이웃에게 그날의 화제를 얘기하며 커피나 차를 홀짝일 것이다. 커피나 커피하우스는 터키가 기여한 것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16세기경 후퇴하는 오스만제국의 군인들이 비엔나 관문에 버린 커피 자루를 통해 커피가 서구인들에게 전해진 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엔나 카페가 탄생했다.

이들 도시에서는 상류 문화와 지역화된 문화가 나란히 발전해 가장 모범적인 터키 건축물과 뛰어난 민속이나 전통 예술, 기술, 관습, 음식 등이 남아 있다. 이들 도시는 또 민속영운 쾨로울루,인간에 대한 깊은 사고를 노래한 시인 유누스 에므레, 지금도 인용되는 전래의 지혜를 담은 글로 유명한 나스레딘 호자 등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들 도시에선 희극이나 이야기극, 꼭두각시나 그림자극 등 대중적인 극장공연도 발전했다. 이들 공연은 국가적이거나 종교적인 행사 때는 공공 광장에서 이뤄졌고, 결혼식이나 박람회 때는 숙박업소나 커피하우스, 또는 개인 집에서 이뤄졌다. 레슬링 등 모든 공연에는 음악이 따랐으며, 예술가들은 탬버린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공연에는 흔히 노래와 춤이 따랐다.

터키인들은 극적인 재능을 지녔는데, 이는 터키의 희극 ‘델라르테’와 15세기부터 전해내려 온 꼭두각시극 ‘카라괴즈’에 잘 드러나 있다. 연기자들은 청중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금새 유머러스한 연기를 펼치며, 때론 청중인 것 처럼, 때론 세금징수원인 것 처럼, 때론 보석수집상인 것 처럼, 때론 평범한 사람을 만난 지적인 엘리트인 것 처럼 연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각 집단에 대한 표현법은 이들이 서로 원만하게 공존하는데 기여했다.

터키의 지방 도시들은 아직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종교 휴일을 기념한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전통악기의 반주에 맞춰 추는 민속춤에 참여한다. ‘기름 레슬링’엔 드럼과 파이프 연주가 따른다. 카라괴즈 꼭두각시극은 연휴 때나 할례와 같은 가족행사에서도 공연된다. 유명한 휴양지나 고대 유적지로 가는 길목엔 재미있는 곳이 많다. 조금만 돌아가면 발르케스르나 차낙칼레, 아마스야, 사프란볼루, 토카트, 네브쉐히르, 디야르바크르, 샨르 우르파, 마르딘 처럼 특색 있는 곳이 많다.

지중해연안의 마을

도로변 언덕 곳곳에 들어선 마을의 실루엣은 가느다란 첨탑에 의해 강조되곤 한다.마을은 그 지역의 기후와 특성을 드러내준다.

지중해 연안의 마을들은 해가 지평선상에 있을 때의 하늘빛 같은 석조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산림이 우거진다. 온난한 지방에선 목제 창틀과 통나무 구조가 많지만 남동쪽으로 갈수록 관목과 석회, 그리고 말린 벽돌로 지은 구조로 변한다. 이곳에선 흙으로 만든 가마솥이나 둥근 헛간,돔 형태의 요새 등을 볼 수 있다 .

흑해와 가까운 산악 지대에선 집들이 넓게 흩어져 있다. 사람들은 계곡에 메아리 치는 노래 소리나 요들로 의사소통을 한다. 남쪽 토로스 산맥엔 온화한 기후를 찾아 여름엔 산맥에서 지내다 봄엔 고원으로 옮기고, 겨울이 되면 삼각주 평야로 이동하는 터키 유목민의 전통 거주지가 있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13세기 이래 거의 모든 것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주말르크족 같은 부르사 외곽 마을이 최고일 것이다. 이곳에선 창문이 쭉 뻗어 나와 있고, 마당엔 작업장이 있고, 방은 2층에 있고, 복잡하고 좁은 골목길에 들어선 전통 터키 가옥의 원형을 볼 수 있다.

마을의 중앙 광장에는 모스크나 학교, 식료품점, 남성 생활공간,커피 하우스 등이 들어서 있다. 커피하우스는 정치문제나 작물가격 같은 주요 문제를 토론하거나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는 남성들의 영역이다. 마을 분수와 안마당, 문간은 여성들의 영역이다. 여기서는 건강과 관련된 상품이나 물건, 아이들 양육, 살림에 관한 정보를 교환한다. 이들 마을에선 당나귀나 트랙터를 타고 밭이나 과수원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들 마을은 춤이나 관습,직물 제작기술, 꼭두각시극 등을 전통 형태로 보존하고 있다. 여전히 행해지는 민속극이나 춤에서는 우랄-알타익 지방의 기우제나 디오니수스와 아도니스 같은 신을 기념했던 아나톨리아 축제의 흔적이 남아있다. 터키의 모든 지역, 모든 마을에는 고유의 민속춤이 있다.줄잡아 1500가지가 넘는다.

자연이나 동물, 일상의 생활, 구혼이나 전쟁에 대한 찬미를 다룬 민속춤은 생활의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그 아름다운 무용과 우주적인 의미는 거대한 예술적 힘의 원천이다.

일터의 풍경

태양과 바다,고대 유적지 뒤에는 일터의 풍경이 있다. 에게해와 지중해 연안을 따라 산업기지나 거주지, 휴양지 등이 농업을 밀어내 과수원이나 곡창, 농장들은 점점 더 내륙으로 이동하고 있다.

목가적인 전원풍경이 빠르고 활기차게 사방으로 번져 여행객은 둘러볼 것이 많아졌다. 밀의 발생지인 이곳, 터키의 빵 맛은 다른 어떤 곳의 빵 보다 맛있다. 과수원과 포도밭, 야채밭 에서는 곱고 싱싱한 작물이 자라고, 피리를 불며 동물과 대화하는 양치기가 돌보는 소나 양은 비록 농장 안에 묶여 있어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닭 만큼이나 즐겁다.

곡물 뿐 아니라 계절 작물인 쌀이나 목화, 사탕나무, 담배, 토마토도 있다. 이처럼 다양하고 풍부한 식량생산은 요리를 풍성하게 했다. 조림작업은 전 국토에서 진행 중이다.주요도로에 내걸린 간판은 광고판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산림의 이익과 신성함을 칭송하는 슬로건이다. 주요도로변의 공장들을 보면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부는 건국 초기 수십 년간 근대화를 북돋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 광업이나 제조업, 섬유산업, 주요 금융시설을 포함한 주요 산업은 대부분 공기업 형태로 돼 있다.

이념과 패션,그리고 변화의 바람

건국 초기부터 특히 도시에서 교육받은 여성들은 직장이나 정부, 비즈니스 분야에서 활동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

국가나 지역사회를 근대화하려는 노력은 19세기부터 시작됐다. 첫번째 개혁의 타깃은 군대와 같은 제한된 단체였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유럽에서 최초였던 오스만 제국군의 전통 군악대(메흐테르 타키미)를 근대적이고 서구화된 군악대로 바꾸는 것이었다. 서구식 예술과 문학은 문화에 스며들어 전통 예술과 음악, 문학을 번성시켰다.

의회 체계도 1세기 전에 도입됐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터키 혁명 이후 근본적이고 광범위하게 사회와 제도를 변화시키려는 개혁이 혁명의 지도자이자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에 의해 시작됐다. 현실주의와 민주적 권리에 관한 법적 보호, 국민에 대한 책임 등은 가장 중요한 개혁이었다.

국가가 이룬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새로운 사회 질서 하에서 여성의 권리를 확립시킨 것이다. 터키 여성들은 역사적으로 어머니상으로서, 가족의 기둥으로서 고귀함의 상징이었다. 아타튀르크의 개혁 이후 사회나 정치,경제 영역에서 여성의 역할은 엄청나게 확장돼왔다.

모든 사회 제도 개혁의 흔적은 풍경에도 남아 있다. 20세기 전반기의 개혁에 의해 터키는 빠르게 근대화를 이뤘다. 그러나 신중한 법령을 통해 문화와 전통을 살리고 발전시켰다. 풍경은 조화를 이루면서도 현저히 변화했다.물론 변화의 폭이 오늘날 만큼 크지는 않았다. 1950년대 도로건설부터 시작해 1980년대 자유시장 개혁으로 절정에 이르면서 풍경은 어지럽게 변모했다.

국가는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경제를 발전시킬 준비가 돼 있었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젊은이들의 생동감으로 힘을 충전했다. 농부나 정부를 ‘아버지(데브레트 바바)’라 부르던 군인세대를 ‘할 수 있다(can-do)는 기업가 세대가 대체했다. 지금이 미래가 걸려 있는, 과거와 풍경으로부터의 속박을 풀 가능성이 가장 큰 시기다. 예를 들어 현재 진행중인 농업 현대화는 아나톨리아 원주민에게서 살구와 체리는 물론 닭, 양, 소 등 모든 것을 빼앗아 그들을 무미건조하게 획일화시키고 불쌍한 존재로 만드는 것과 같다.

더 나은 것을 알고 미각만으로 호르몬 없이 키워진 식물을 골라낼 수 있는 현명한 터키 여인이 우리의 희망이다. 하지만 그녀가 리바이스를 더 좋아하는 자신의 의욕적인 딸에게도 지혜를 물려줄 수 있을까?

터키인들은 재주와 지혜, 적응력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와 같은 민주적인 자치제 하에서 터키의 풍경에는 국민들 간의 조화롭고 지속적인 친밀함이 녹아 있을 것이다.

터키 풍경 속으로 들어가기

터키의 각 풍경은 사람들의 배경이나 환경이며 일상사의 사건이다. 여행의 관점에서 가장 스릴 넘치는 것은 이 풍경 속으로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인간이 교제하는데 있어 가장 근본적인 룰은 주인과 손님의 역할이 뚜렷한 동등한 동반자 관계다. 이 룰은 서로 존중하고 같이 책임을 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마치 겉모양이나  삶의 방식이 다른 각 모임이 같이 모험을 할 때 하나의 원칙을 정하는 것처럼. 터키인들은 관광이라는 경기장에 들어서면 세련된 시설이나 서비스 정신보다는 금새 전통의 우호로 무장한다. 오늘날 터키가 뛰어난 관광 인프라를 지니고 있어도 터키인들은 대부분은 성실성과 예의를 더 중요시 한다.

터키인들은 특히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이해받거나 사랑받으며, 더 잘 알려지고,세계의 시민으로서 동등한 관계를 맺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당신과 관계를 맺으려는 그들의 열정을 이런 관점에서 해석해보라. 그들은 ‘공정한 대우’나 많은 사례로 보답 받기 보다는 오래 동안 친하게 지내거나 같이 시간을 보내고, 카드나 편지, 선물을 나누고 싶어한다. 이 같은 태도는 관광산업이 발전하면서 바뀔 것이지만 아직은 방문객들에게 많은 것이 달려있다. 지금도 터키인들의 수줍음은 그대로 있다.

터키의 풍경 속으로 참여하는데 있어 알아야 할 점이 있다.

우선 인사와 악수,껴안기,볼에 키스하기를 한 다음엔  ‘안녕하세요?’ ‘가족들은 잘 지내죠?’ ‘건강은 어떠세요’ ‘사업은 잘 되나요’ 등이 인사말이 중요한 의식이다. 그들은 건강이나 평안한 삶을 무엇 보다 먼저 알고 싶어 하는 것 처럼 보인다. 젊은이들은 가족의 어른을 찾아 뵐 때 손에 키스를 한다. 친구와 가족이 방문을 하는 것은 결속을 다지기 위한 것이다.

어린이들에겐 용돈이나 선물을 주고, 사회적으로도 자비의 의무가 실행된다. 이런 것은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즐거운 기회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전통사회와 정신적인 면을 강조해야 하고,행동에서도 일정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

사회적 모임에선 모든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 앉아있어도 여성은 여성과 먼저 대화를 하며,남성들 역시 남성과의 대화를 먼저 시작한다. 모두 일어서서 서로 뒤섞이는 파티는 도시 엘리트 집단을 제외하곤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다. 저녁식사 후에는 커피나 차, 사탕, 과자, 빵과자, 과일 등을 대접하기도 한다.

집으로의 저녁식사 초대는 특별한 영광이다. 저녁식사 때는 안주인이 여러 차례 식사를 더하도록 권하는 것이 전통이다. 손님은 이 권유를 따라야 한다. 저녁식사는 맛있는 요리를 즐기면서 천천히 진행된다. 필요할 경우 손님이 꽃이나 과자 등을 갖고 오기도 한다.

사업상의 관계에서는 모든 일이 사회적으로 이뤄지지만 관계의 깊이에 따라 인사를 나누고, 커피나 차, 음식, 음료를 같이 마시거나 먹는다. 구멍가게에서 조차 주인과 손님 사이의 정보가 교환된다. 거래에는 다양한 책임이 필요하다.물건 값 깎기는 적대적 관계자간의 단순한 협상이 아니라 호의를 확인하는 사회화이거나 친구간 잡담의 일부다.

물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주제도 있다. 국기나 군대, 나라, 종교 등이다.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설명하거나 답할 때 크게 기뻐하지만 비판이나 결례, 농담 조차 가볍게 취급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정치는 공정한 게임이다. 아마도 터키인들처럼 정치문제를 논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요컨데 사회적 과오를 범할 수 있지만 문제는 숨은 의도다. 평등함과 존경이 있다면 터키인들은 이를 빨리 간파해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아무쪼록 머무는 동안 즐거움이 함께하길. [출처 : 터키문화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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