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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문화/역사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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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인회        
작성일 2015-04-21 (화) 00:37
추천: 5  조회: 2514       
IP: 88.xxx.248
난 터키에서 이렇게 살아 가고 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스탄불 치대를 졸업하고 현재 교정전문 박사로 일하고 있는 윤은경입니다. 내 인생의 3분의 2를 터키에서 살아왔는데 내 생활 이야기가 여러분들께 얼마나 흥미를 느끼게 할지, 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어요.

 1988년도 3월달에 본 이스탄불의 첫인상은 회색 빛 도는 하늘, 건물, 도로 들이 너무 맘에 안 들어 울었습니다. 그래도 날 반겨준 건 오렌지와 올리브였지요. 후에 들은 말에 의하면 겨울에 온 사람들은 오렌지 맛에 반하고 여름에 온 사람들은 체리 맛에 반한다고 합니다.

터키로 이민 간다는 부모님 말씀에 터키가 어디에 있나 싶어 지구본을 몇 번이나 돌려봤습니다. 낯선 문화, 낯선 동네, 낯선 사람들 터키어 단어 하나 모르고 시작한 터키생활이었습니다.

한국에서 6년 다니고 왔지만 터키 말을 모르니 다시 5학년부터 시작했습니다. 첫 1 년은 벙어리 생활… 유일하게 즐거운 수업은 수학과 미술 시간이었지요. 말이 필요 없기에. 그 시절엔 한.터 사전도 없어서  노트에 그림 그려 친구들한테 보여주고 단어 배우고, 표현하고 소통을 했습니다.

점심시간에 매점에서 일주일 넘게 토스트를 사먹다가 햄버거 먹는 아이들 보고 먹고 싶어 단어를 배워 매점 아저씨한테 햄버거 하나 주세요 했더니 아저씨가 뭐라고 되묻는데 난 이해를 못해 다시 햄버거 하나 달라고 하니 또 아저씨가 뭐라고 물었지만 난 가만히 쳐다보다가 다시 토스트 하나요 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그때 케첩 넣어 줄까라고 물었던 거 같습니다.

1년후 중학교 생활은 즐겁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사립학교라 영어수업이 대부분이어서 영어 기초를 다같이 배우고 시작하는 거라 잘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 공부라는 건 선생님 말씀 집중해서 듣는 거라는걸 알았습니다. 수업시간에 몰두하여 이해하면서 들으니 집에서 숙제만 해도 복습이 되었고, 그 다음날 배울 페이지를 한번 훑어 보고 가면 수업도 쉽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 시절 영어랑 터키어 둘 다 같이 잘 배울 수 있었고, 반에선 1 등, 같은 학년 반들 중에선 1-2 등을 겨루는 실력이라 신나게 즐기면서 학교생활 한 것 같습니다.  다음해에 터키어로 역사와 지리 수업이 시작됐을 땐 너무 어려워 시험 준비할 땐 공부한 책장을 다 외웠습니다. 그래서 역사 인물이나 장소 이름이 문제에서 보이면 그것과 관련된 모든 것을 외운 대로 다 적었지요. 시험지에. 그렇게 해서 7 점 정도 받았습니다.

학교 방과 후 밖에서 노는 건 별로 안 좋아해 집에서 동생이랑 공부하는 게 일상 생활이었습니다.

중 2때 부 터는 어느 정도 말도 통하고 대화도 되고 수업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적도 항상 상위 건에 들었고, 그때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 한국사람이고 여기선 눈에 띄는 외국 사람이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학교에서 어긋난 행동 없이 바르게 지내고, 한국사람의 이미지를 좋게 심어줘야지 하며 신경을 쓰고 다녔습니다.

고등학교를 전교 3등으로 졸업하고, 대학준비를 할 때였는데 일반 경영학과 같은 걸 공부할까 고민 중에 아버지가 일반 과 전공해서 회사에서 월급쟁이로 생활하는 것 보다 전문직으로 직업을 가지면 내 일을 가지고 더 즐겁게 일하지 않겠느냐 라고 하시면서 치대가 어떻겠냐고 슬쩍 말하셨습니다. 그래서 대입시험준비하고 신청서 넣을 때 이스탄불 치대를 1번으로 적었습니다.

그 시절 고등학교 교육시스템이 크레디 시스템으로 원하는 과목 골라 수업 받고 점수 채우는 것이어서 난 수학과 화학을 위주로 수업을 받고 크레디를 빨리 다 채워 2년 반 만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대학 들어가기가 아주 힘들고, 학년 올라가는 건 쉽다고 들었는데 여긴 들어 가는 것도 어렵고, 특히 학년 올라가는 건 더 힘듭니다. 혼자 집에서 2 달 동안 열심히 문제지 풀며 공부하고 치대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학년 올라가는 건 진땀을 좀 흘려야 했습니다. 특히 치대는 일반 과랑 다르게 실습 시간이 있어 실습 수업에 알 맞는 환자 구하고 진료의자 차지하기 위해 자리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내 생애 대학교 3 한 년 때 시험 공부를 젤 많이 한 거 같아요. 해부학 과목이 정말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도서관에 아침에 들어가 저녁 문 닫을 때까지 5일을 다니며 공부했는데 그때 한 학생이 다가와서 나보고 괜찮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온종일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이상해 보였나 봐요. 다행이 학교 생활은 수월하게 보냈고 졸업도 정상적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부 터 통역도 시작했는데 대학 들어가서는 알바로 통역을 하면서 용돈이랑 학비도 벌어 썼습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 보람도 느끼고 돈도 벌고 즐거웠습니다. 삼성, 현대, 엘지등 여러 곳에서 터키어 수업도 했습니다.

대학을 바로 졸업하면 개인 병원에서 일 시작해야지 했는데, 막상 졸업하니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론 실습이 부족하게 느껴져 공부를 더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시험 준비하고 이스탄불 대학원 교정과 와 수술 임플란트과를 고민하다가 교정을 택했습니다.

대학 졸업할 때쯤 지금의 터키 남편을 만났는데, 2년 만나고 프러포즈를 받았을 때 고민을 엄청 많이 했습니다. 과면 결혼 해도 될까, 이 남자 정말 믿고 함께 살수 있을까, 양가 부모들은 뭐라고 할까, 결혼하면 여기 눌러 사는 건데 내가 아무리 여기서 자랐어도 적응할 수 있을까, 만약 부모님들이 나중에 한국 들어가시면 나 혼자 여기 남는 건데 외롭지 않을까 등등 1년을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엄청 싸우기도 했습니다. 자길 못 믿겠냐고. 그렇게 1년 고민 후에 승낙을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말했더니 아버지가 터키사람 이라고 반대하셨습니다. 15년 동안 나의 삶이 터키에서 성장해 왔는데 한국 사람 만날 기회 전혀 없이 터키 사람 만나는 게 지극히 정상으로 보이는데도 반대가 심하셨습니다. 그래서 1 년 동안 부녀간에 서로 서먹하게 지내다가 끝내 허락을 받았고 결혼을 했습니다. 우리가 잘 사는 모습 보여주면 걱정 안 하시고 반대하셨던 그 맘도 풀리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다행이 지금 잘 살고 있고, 여유롭게 이것저것 즐기면서 지내는 행복한 모습 가까이 보여드릴 수 있으니 맘도 편해요. 사실 고등학교 시절 일기장에다가 자주 난 외국사람 이랑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적고 싸인까지 하고 했었는데 아마도 그 시절 너무 내가 큰소리쳐서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박사과정 공부 중 결혼했고 첫 아이도 낳아서 공부하랴, 환자 보랴, 학생들 수업 준비하랴 논문 준비에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스탄불 대학 교정과 분위기는 여자 교수들만 있어서 특히 많이 힘들었어요. Mobing 도 심했고요. 결혼하는 조교에게 논문 준비 다 해 놓고 결혼하냐, 결혼 상대자 이름은 안 잊는데 환자 이름을 잊느냐, 나 같은 경우엔 임신 했다고 담임 교수한테 말하니 축하의 말은커녕 논문은 어떡할 거냐 아이 낳을 거냐 라고 물었어요. 아이 낳고 4 개월만 휴가니 아이 돌보는 게 젤 큰 문제라 시어머니 집 근처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보모도 구하고 시어머니께 도움 받아 몸은 피곤하지만 맘만은 편하게 대학원 생활을 했습니다. 모유 수유하는 일 년 동안 잠도 하루에 3-4 시간밖에 못 자고 지냈습니다.

임신했을 때 일상이 바빠 잘 못 먹고 다녔고, 입덧도 첫 5 개월 동안 심해 부엌엔 아예 못 들어갔습니다. 대학 병원에선 엘리베이터도 자주 고장 나, 매일 6 층을 하루에 6 번 정도 오르락 내리락 걸어 다녔고, 그 땐 잠 실컷 자보는 게, 아침에 알람 시계 소리 안 듣고 일어나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5년간의 대학 생활, 6 년간의 대학원 생활 끝에 드디어 박사 논문 제출을 마치고 후련한 맘으로 개인 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아이가 3살 될 때 박사과정 마치고 느긋한 맘으로 둘째도 가졌습니다. . 이번에는 실컷 자고, 먹고 여유롭게 생활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 유럽과 아시아 사이드에서 여러 개인병원 다닙니다. 병원에서 환자 예약을 받아놓으면 내가 원하는 시간으로 진료 날짜를 정하고 가서 환자 진료를 합니다.

아버지 말씀대로 전문직 직업을 가진 것은 정말 잘 한 거 같아요. 내 적성에도 맞고, 하는 일도 즐겁고 또 사람들에게 도움되는 거라 더 자부심도 느끼고 보람도 있고 즐겁습니다.

한국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한국 회사생활에 꼭 회식이라는 문화가 있어 술자리가 많고 업무가 거의 퇴근시간을 훨씬 넘어 끝나 남편한테서 육아나 가정생활에 도움 받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근데 여기선 그런 문화가 없어 퇴근 시간이 되면 바로 나가니 같이 집안 생활하는 거, 아이 봐주는 거 그런 게 참 좋습니다. 저의 남편도 결혼 초에는 회사 생활을 해서 일정한 시간에 집에 오고 하니 좋았고, 지금은 개인 사업을 해도 해외 회사들과 거래를 많이 하지만, 접대 같은 것도 몇 달에 한번씩 꼴이니 미리 이야기 해주고 가니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다른 나라에선 몰라도 여기선 동양인으로 사는 것이 편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한국인 이라고 하면 옛 한국전쟁 때를 말하는 어르신들이나 요즘 k-pop으로 인해 한국 드라마 이야기 하는 젊은 아이들이 많아 기분이 좋습니다.

한국과 터키 두 나라의 풍습이 비슷합니다. 어른을 존경하는 것, 가정 속의 생활 태도나, 예의범절 지키는 것들이 같아요. 특히 여기도 시어머니 시누이 며느리 관계가 너무나도 한국이랑 비슷합니다. 며느리들이 시어머니 대해서 이야기 할 때 kayinvalide 라고 말하면 그건 시어머니를 존중하고 서로 잘 지낸다는 뜻이고 kaynana 라고 말하면 그건 시어머니를 싫어하고 서로 잘 못 지낸다는 뜻입니다.

주위에 보면 시어머니랑 며느리 사이가 안 좋은 집이 아주 많아요. 전 다행이 너무 좋은 시어머니를 만났어요. 제 의견 물어봐 주시고 부탁하면 다 들어주시고, 필요한 것 챙겨주시고 신경을 써 주세요 항상. 그래서 저는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를 낳고 살다 보니, 결혼해서 두 사람으로 살 때 못 느꼈던 것들이 고민이 되고 문제도 되는데 먼저 아이들 언어 공부가 그렇습니다. 내가 아이랑 같이 있을 때는 한국말을 하지만, 학교 시간이나 저녁시간엔 아빠랑 두 자매가 대화할 땐 터키 말을 훨씬 편하게 합니다. 두 아이다 한국말은 잘 알아듣지만 대답은 터키말로 합니다. 거의. 그래서 앞으로도 엄마의 나라 모습, 풍습, 언어 등 많은 것들을 두루두루 보여주고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엄마가 한국사람이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위에서 얼굴 생김새 보고 일본 사람이냐, 어디 사람이냐 물으면 바로 한국사람이라고 대답하는 딸을 보면 대견스러워요.

내가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요 우리 아이들도 그랬으면 좋겠어요.사람이 인생을 살아갈 때 이게 정말 사람 살아가는 의미구나 라고 느낄 때가, 아주 높은 직위를 가졌을 때도 아니고 돈을 아주 많이 벌었을 때도 아니고 그냥 평범하게,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건강하게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삶의 의미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이름을 널리 알리거나 훗날에 이름을 남길 위대한 작품을 뒤에 남긴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요. 하지만 아이를 낳으면 그게 작품이에요. 나만의 작품, 내가 아끼고 날 생각해주는 작품. 날 훗날에도 기억해 줄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것만 생각해도 맘이 든든해져요.

이제 작은 아이도 유치원 갈 시기가 됐으니 저도 일을 더 열심히 하는 것 외에도 내 자신을 위한 시간을 좀 가졌으면 해요. 영화 보러 가는걸 아주 좋아하는 우리 부부가 예전엔 주말에 하루에 두 편씩 극장에서 보고 그랬는데, 아이 낳고 난 후 아이 보는 게 우선이라 극장에 가는 건 아예 관두고 시간 날 때마다 집에서 가끔 보는 걸로 해결한답니다. 요즘도 일 끝나면 바로 집에 와서 아이들 돌보고 공부 도와주고 재우고 나면 밤이니 피곤해 영화 한편 다 보는 것도 며칠이 걸려요.

아이들이 커 가면서 아이들 교육 문제나 성장 과정 문제로 걱정이 많이 생기거든요. 다행이 학교에서 상담이나 세미나 같은 걸로 도움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여러 학부모들과 나누는 이야기들 속에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라 는걸 느끼고 확인하면서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어요. 그래서 주위 부모님들과 가끔 만나면서 서로 정보나 고민 나누면서 지냈으면 해요.

최근에 들은 말로는 터키분과 결혼해서 여기에 정착하신 분들도 많이 늘어났다고 하던데, 그런 분들은 제가 좀 전에 말한 거처럼 용기가 있고 대단한 분들이시라 생각해요. 특히 그런 분들과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는 것들을 서로 나누면서 도움 줄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도와드리고 싶어요. 한국 시민이지만 터키 시민도 되는 세계의 시민이 된 이상 아이들을 훌륭하게 성장 시키는 것이 우리의 의무인 거 같아요. 그럼으로써 아이와 부모가 같이 성장해 나아가는 거죠.

앞으로도 한국을 더 좋게 알리고 또 좋은 본보기가 되도록 노력 많이 하겠습니다.

윤은경

Eunkyung Demirag  (Michelle)


 

 

 

 


 

이름아이콘 담비
2015-04-21 22:28
대단하십니다. 어려운과정을 지나 오늘이 있으신것도 감동적입니다만, 현지 자원봉사활동 등은 물론 한인들을 위한 도움주기에도 누구보다 적극적이신 윤박사님의 아름다운 마음에 무한한 존경과 사랑을 보냅니다.  특히 어글리 코리안도 적잖은데 중2 때부터 한국인의 이미지를 생각하시고 행동 등을 신경쓰신 부분에서는 말이필요없이 지금도 우리모두가 본받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윤박사님 같은 분 때문에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가집니다. 가족이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이름아이콘 늘열심히
2015-04-22 17:03
와~ 정말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터키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정말 쉽지만은 않던데...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고 희망과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네요. 앞으로 더 멋진 인생 응원합니다. !!! :)
   
이름아이콘 윤은경
2015-04-23 03:56
좋은 말씀들 해주셔서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저보다는 성인이 되서 오신분들이 적응하시면서 살아가시는게 더 대단하신것 같습니다. 서로 돕는 사회에서 의미있게 사는것이 젤 아름다운것이 아닌가 생각듭니다.
   
이름아이콘 황영호
2015-04-24 13:31
ㅎㅎㅎ 노력하시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이름아이콘 Sevda(세브다)
2015-04-25 20:35
좋은글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 (그 좋은글 읽으면서 한국말에 대한 모르는 단어들도 알게 되었으니 기쁩니다 전 터키 사람이라서요 ㅎ) 가족들이랑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사시길 바랍니다 ^^
   
이름아이콘 우광호
2015-04-29 11:00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습니다. 어떻게 살든 한 번 사는 게 인생이라지만 하나하나의 인생이 모두 분명한 차이가 있겠지요. 박사님의 경우는 현재까지만으로도 매우 성공적인 인생이 확실합니다. 계속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멋지게 살아가시길...
   
이름아이콘 글렌박
2015-05-02 01:57
Merhaba~~~
오늘 터키의 노동절을 맞아 오스만베이 지하철역 근처에 머물고 있는 저는 꼼짝없이 집에 갖쳐 온종일 지내다가 이 글을 읽었습니다.
성실과 치열로 귀결되는 아름답고 멋진 삶이네요.
비단 터키에서만이 아니라 그 어디에서 생활했어도 별반 크게 다르지 않은 좋은 삶을 살고 계셨으리라 믿어 마지 않게되는 수기네요.
저는 한국에서 터키의 피앙새를 만나러 이스탄불에 와 있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차, 현실의 녹록치 않음, 그리고 문화와 사고의 차이 등등...
이러한 실질적인 문제들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더이상 그것들때문에 이 인연을 포기할수 없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습니다. 너무 좋기도 하지만 또한편 몹시 무거운 책임감과 두려움이 있는것도 숨길수 없는 사실이지요.
나의 사랑 그녀의 말처럼...늘 알라께서 우리를 보호하고 행복의 길로 인도하실것을 믿으며 좋은 생각만 가지고 출발하고 싶습니다.
혹여나 터키에서 살게된다면(제 맘의 막연한 바램은 그렇지만~) 이 글이 늘 생각날 것 같네요.
생면부지의 분들이지만 이곳에서 글이나 사진으로나마 잠시잠시 접하는 모든 분들이 서로를 위해 기원하는 마음을 품어준다면 그 기운이 전달되어 모두가 행복해질것이라 믿어봅니다.
앞으로도 더 많이 행복하시고 늘 건강하세요.
건강해야 사랑도, 나의 행복도 지키고 오래오래 간직할수 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이름아이콘 윤은경
2015-05-04 21:03
좋은 말씀들 나누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름아이콘 김상종
2015-05-04 23:32
저는 작년 10월 부터 터키 투판벨리 라는 곳에서 파견근무 중입니다..선생님 글을 읽고, 감동 먹었네요..ㅋ 저는 딸이 하나 있는데..선생님 처럼 터키에서 치과의사로 키우고 싶습니다..좋은 도전의 글 감사합니다..투판벨리에서 드림
   
이름아이콘 선아
2015-05-05 04:18
안녕하세요. 올해부터 이스탄불에 거주중인데 예약하려면 어디로 연락을 해야할까요?
다른 도시에서는 다행히 좋은 치과의사를 만나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지난번 남편이 탁심에서 불만족스런 치료를 받아서 고민하던차에 글을 보게 되었어요.
여기에 연락처 남겨주시기 어려우면 이메일로 연락 바랍니다.
lorettalee@naver.com
   
이름아이콘 윤은경
2015-05-09 04:49
0532 7784188
istdent@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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